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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5일 수요일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


우리나라는 회사와 조직이 개인에게 굉장히 밀접한 영향력을 지닌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일단 시간 자체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상하관계가 뚜렸하다. 또 회식이나 야유회 워크샵 단합대회 식사자리 등등이 너무 많은편이다. 이로 인한 손실도 상당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방향이 매우 옳지 못하다고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멕시코에 이어 OECD 국가중에서 가장 업무 생산성 효율이 떨어지는 나라중 하나다. 이런 상하조직관계에 과정에서 쓸데없는 소모가 많은것도 그 이유중 하나이리라.

또한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개인 프라이버시 보다는 좀더 친밀감이나 유대감을 중시하는 영향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모든관계가 평생동안 그대로 동일한 거리감을 지닌채 이어질수가 없다는게 이유다.

가까워지면 그만큼 언젠가는 멀어지게 되고. 또 여러가지 상황에 의해서 관계가 좋아질수도 있고 나빠질수도 있다. 문제는 좋아졌을때 보다는 이전과 나빠졌을때에 발생하게 된다. 그것이 친구의 관계이든 직장동료의 관계 또는 상사와의 관계 아니면 회사나 조직과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인간 관계난 모든것이 자연스럽게 또는 어떠한 상황이나 계기에 의해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는데 너무나도 가깝게 있다가 멀어지게 되면 그만큼 어느 한쪽에는 타격이 있을수 밖에 없다.

또 이러한 사이간에 분쟁이 발생한다면 서로에게 깊은 실망감을 가지고 증오심으로 발전이 될수도 있게된다. 우리나라에 동업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건 결국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를 가지지 못하고 너무나도 밀접한 관계로 또 서로에게 종속적으로 일을 하다보니 결과가 좋지 못할때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 탓을 하는 심리와 맞물리면서 서로 분쟁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정말 실제로도 그렇다.

타인을 위해서 주변인을 위해서 처음부터 희생을 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 그런 희생이 필요한 일이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하지 않는것이 상책이다. 여기서 희생은 종종 때에 따라서는 법적인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좋을때는 좋은게 좋다며 그냥 지나가지만 상황이 나빠질때는 가볍게 지나갔던 문제들이 하나하나 생각지도 않는 사태로 번져가며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 시점으로 연결될수도 있다.

그렇게 때문에 애초에 너는 너. 나는 나와 같이. 각자가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 일하며 또 인센티브나 재산권을 서로 나누어서 조직의 성장과 발전이 자기 자신의 성장으로 이어질수 있도록 하는것도 좋겠다. 하지만 어떤식으로든 최대한 타인과의 접점이 있으면 있을수록 사실은 분쟁의 씨앗이 될수도 있다.

그런면에서 개인적인 사생활과 업무적인건 정말 엄격하게 분리를 해야 하며 구성원들에게도 이점을 제대로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이건 사실 가족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것을 다 간섭하거나 챙길려고 하거나 맞출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이 분쟁이 발생한다. 상대방을 그 인격체 하나로서 존중하고 큰 기대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가도록 내버려두는것이 더 상책일수도 있겠다. 그게 되지 않을것 같으면 애초에 그런 종속적인 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겠다. 이는 설사 자기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겠다.

적당한 거리감을 가지는게 사실은 가장 현명한 대인관계 처세술일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바로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어쩌면 이기적인 대답일지도 모르겠고 또는 매우 당연한 대답이 될수도 있다. 아니면 가족이 있는 사람이면 가족을 될수도 있겠고 누군가는 돈. 또는 자유. 생명. 거국적으로는 지구나 종교적인 대답을 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앞서 말한 여러 사람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바로 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돈이며 설사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사실 내가 없어지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 만약 나와 가족중 둘중 하나가 반드시 사라져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몰라도 결국 대부분의 상황에서 나는 나의 안위를 먼저 챙기는것이 우리 가족에게도 또는 나자신에게도 현명한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어쩌면 정의보다도 더 중요한게 나라는 생각도 가끔한다. 먼저 이 이야기를 하기전에 먼저 짚고 넘어갈것은 정말 당신이 현명하게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굳이 위험한 범죄와 같은 종류의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게 좋다. 그것은 장기적으로보면 모든 기반을 다 뒤 흔들수가 있기 때문에 도덕적인 부분이든 특히나 법적인 문제의 리스크를 감수하며 단기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게 좋다. 그게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니까.

서론은 이쯤에서 두고 만약 당신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치자. 그럼 경우에 따라서는 자수를 하고 죗값을 달게 받겠다고 하는것이 도덕적으로는 옳아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이걸 단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중에 한가지가 바로 정준영과 승리의 케이스라고 생각된다. 둘다 거의 같은 혐의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혐의로 궁지에 몰린 처지였다. 하지만 정준영은 거의 지금은 소식조차 찾아보기 힘들정도로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그 죗값을 달게 받고 있다. 물론 정준영은 여러 혐의를 다 인정하고 거의 반박조차 없었다. 분명 정의라고 한다면 차라리 정준영이 더 정상참작을 받고 사람들에게 용서를 조금이라도 더 받겠지만 정작 모든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거부한 승리 같은 사람은 오히려 철창밖에서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자기 자신의 안위보다 제 3자의 평가나 조치를 곧이곧대로 따른다면 그만큼의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사실상 단시간내에는 돌이킬수도 없다. 설사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떼고 그런적이 없다고 하고 당장 몇일뒤에 거짓말이 드러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은 아니라고 부정하는 그 사람은 결국 최근 일련의 사태에 이어 장관직에 올랐다. 100% 그 사람이 잘못되었는데 억지로 부정한다고 우겨버렸다고 하면서 비난하는게 아니다. 우리는 또는 제 3자는 그거 잘못되었다 거짓말이다 뻔뻔하다라고 욕을 할수 있지만, 입장을 바꿔서 내가. 또는 당신이 그 사람의 위치에 간다고 하면 결국 가장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일반 대중적인 입장에서는 힐난하게 비난을 하겠지만 그런 표면적인 상황보다도 나는 좀더 깊게 들여다보는게 맞다고 생각된다. 결국 그 사람이 범죄자든 그렇지 않든 자기를 적극 변호하고 방어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것이며 그것을 반드시 꼭 최우선적으로 행사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것은 애초에 차라리 그럴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것. 잣나무 밑에서 선비가 갓을 다시 매는 짓을 하지 않는것. 애초에 말이 나올 일을 하지 않는것. 굳이 소탐대실처럼 작은것을 얻기 위해 큰것을 잃어버릴 위험리스크 요소 자체를 하지 않는것이 중요하겠다.

원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는 만족할 지점을 정해두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기와 자기 가족의 안위를 정말 위한다면 이 욕심을 절제하고 적당한 선을 넘지 않는것. 그것이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따금씩 되새기는 편이다